호치민 작전전방지역 지휘국의 유적지는 빈증성, 저우띠엔현, 민떤면(이전에 민탄면), 1통에 있다((위치는 1987년 반띠엔중 대장에 의해 결정되었다). 2010년 5월 11일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국가 혁명사적유적지로 지정되었다.
역사적 의미
호치민 작전전방지역 지휘국의 유적지는 작전 중앙국, 지역군사위원회, 사령부의 올바르고 직접적이고 창의적인 지도와 지휘를 반영한 대표적인 유적지이다. 이 유적지는 임시기관이었지만(1975년 4월 26일 ~ 4월 30일) 직접적으로 역사적인 호치민 작전인 새 시대의 전쟁 전략에서 올바르고 현명한 지도 역할을 보여주었다.
호치민 작전전방지역 지휘국의 유적지라고 불리는 이유는 호치민 작전전방지역 지휘부가 송배의 따티엣크롬 – 록탄 – 록닌 촌락에 있는 남베트남 해방군 기지에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1975년 3월 25일 정치부와 중앙군사위원회 회의 후, 같은 날에 레특터 동지는 정치국을 대신하여 록닌에 가서 팜홍 동지, 반띠엔중 동지와 함께 사이공 해방 작전을 직접 지휘했다.
전역이 막 시작되려 했을 때 기관의 작전 상황에 근접하도록 캠페인을 처음부터 직접 지휘하기 위해, 호치민 작전 지휘국은 바로 정치부(구체적으로 레득터 동지와 반띠엔중 동지)에 의해 전장에 더 가까운 전방 기지로 이동하기로 결정했으며 깜새를 지휘국으로 선택했으며 호치민 작전전방지역 지휘국이라고도 한다.
자리를 옮기기로 결정된 호치민 작전전방지역 지휘국은 역사적인 호치민 작전에서 우리 군대와 인민의 승리를 위한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기 위해 정확하고 현명한 방향을 직접적이고 민첩하게 결정하는 중요한 장소 중 하나이다.
호치민 작전전방지역 지휘국은 정치부의 역사적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장마가 오기 전에 사이공-자딘, 남베트남을 해방했으며 베트남 인민의 30년간의 혁명투쟁과 무장봉기를 가장 빠른 시간에 완전히 종식시켰다.
특점
이 유적지는 삼림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깍리에우 개울, 옹로 개울, 비엔록 개울, 바자 개울 및 바탄 개울 등과 같은 큰 깜새 개울로 흐르는 작고 짧은 스트림이 많이 있다. (현지 역사에 따르면 깜새는 유서 깊은 땅으로 개울 옆에 많은 종류의 귀중한 나무가 있는 원시림이 있다. 이 개울은 유익한 "무술" 특성을 가지고 있어 프랑스 식민주의자들과 미제국주의자들을 상대로 한 두 번의 저항 전쟁에서 베트남 군대와 인민이 적을 몰아내도록 많은 이점을 만들었다.
6182.96m2 의 총 면적으로 북위 11023'32", 동경106030'40"에 위치해 있는 이곳은 재생의 숲으로, 오래된 숲은 베어지고, 재생된 숲도 여러 번 불타 버렸다. 이 유적지는 임시기관이기 때문에 이곳의 캠프와 참호는 주로 사용 가능한 목재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오랜 시간의 비와 태양으로 파괴 후에 희미한 흔적만 남았다. 반띠엔중 동지가 일상 생활을 위해 물을 가져간 폭탄 분화구는 여전히 손상되지 않았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 따르면 매년 3월에 카사바를 재배하기 위해 불에 태운다고 한다. 현재 이 지역의 경관은 예전에 비해 많이 바뀌었고, 고무나무 숲이 유적 지역을 둘러싸고 있다. 식수용 폭탄 분화구 등의 흔적, 참호의 흔적도 흐릿하고, 풀이 꽤 많이 자라고, 나무에 가려져 옛 흔적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1987년 반띠엔중 대장과 일부 지역 동지들이 방문하여 남아 있는 흔적을 토대로 위치를 확정했다. 그 후, 빈롱 현과 빈탄 면의 사람들은 이곳을 표시하기 위해 석비를 세웠다. 석비는 높이 3m, 폭 2.5m의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졌으며 석비에는 별이 붙어 있으며 별 아래에는 1975년 4월 30일 민탄면, 호치민 전방지역 지휘국라는 글씨가 기록되어 있다. 1990년 8월 20일까지 제7군구박물관은 옛 비석에서 약 3m 떨어진 곳에 높이 15m, 폭 1.5m의 또 다른 석비를 세웠다. 2005년에 지금까지 화강암으로 중수되었다.